38선이 지나가는 강원지역은 전쟁의 격전지였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 규모도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과 유엔에 구호물자를 요청하여 이들이 제공하는 구호물자를 각 도별로 피난민들에게 제공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해안과 산악지대의 주민들은 대부분 도보로 남하하였고, 벽지까지 구호품이 전달되지 못하면서 아사(餓死)나 동사(凍死)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기아와 질병으로도 많은 피난민이 사망하면서 이들에 대한 긴급구호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강원지역 가톨릭교회의 구호활동이 시작되었다. 전쟁 후 교회의 구호 사업은 긴급한 기본생활 대책, 즉 의식주의 해결에 집중되었 다. 긴급구호 이외에 교회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구제 사업은 의료사업과 아동에 대한 부분이었다. 강원지역에서 가톨릭 교회에 의해 운영된 고아원은 2곳에 불과했고,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전후 많이 발생한 고아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