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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학 학술총서

외국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강원 지역

연구진
이원희, 정병진, 김인선
발행처/발행일
강원연구원 강원학연구센터 / 2019년 12월
자료유형/분야
단행본 / 지역학
키워드
외국인, 선교사, 서한집, 뮈텔, 강원도, 골롬반
조회
2,088
원문
강원학학술총서 13_외국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강원 지역.pdf (7.2 MB)

요약

   본 연구는 강원 지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서 강원 지역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 시기는 조불수호조약이 체결되는 1886년부터 1945년까지로 하였으며 대상 지역은 현재의 북강원도를 포함한 강원 지역 전체이다. 그리고 연구의 자료로는 『뮈텔 주교 일기』를 비롯하여 강원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였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서한과 그들이 보고서를 연보 형식으로 간행한 『서울교구연보』,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선교 관련 문서로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골롬반문서』 그리고 골롬반의 선교 잡지인 『The Far East를 대상으로 하였다. 특별히 강원 지역에서 1938년까지 활동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서한에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타자(他者.인 그들의 기록은 선교에 대한 기록이기는 하나, 강원 지역에서 한국의 근대사를 직접 경험한 1차 사료로 강원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을 담고 있다. 또한 남과 북, 분단 이전의 역사를 담고 있으므로 현재 강원도만이 아닌 북강원도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서 강원 지역의 지리적인 특성은 험준한 산악지형이라는 것이 공통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강원 지역을 동과 서로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존재로 인해 영동과 영서 지역의 생활과 문화가 다르다는 점도 파악하고 있었고, 험준한 산악 지형이 강원 지역민의 소박한 성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친일 노선으로 선회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교구장인 뮈텔 주교는 일본 통감부가 조선에 설치되는 것에 대해서 조선 사람들이 감정이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화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선교사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들 역시 동학농민군이나 의병에 대해서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대체로 의병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병을 처단하거나 의병을 잡는데 몰두하는 일본군에 대해서 잘하고 있다고 긍정하는 것에 비해서 투르니에 신부는 다른 선교사들이 의병과 일본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일제강점기 일진회의 활동과 일진회에 대해서, 이천에서 활동하던 루케트 신부와 부이수 신부는 일진회원들이 신자들에게 단발을 강요하고, ‘천주교는 노쇠한 종교이고, 일진회는 새롭고 참된 종교이다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통해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음과 일진회원의 힘이 막강하여 잘못 대처하면 신자들을 괴롭힐까 염려스럽다고 하여 주목할 만하다.

   선교사들은 그들 본연의 활동인 선교에 대한 기록에서 성당 건축, 학교 설립, 성영회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는데, 1899년 강원 지역에 있던 5,000명의 신자는 1922년에 10,111명으로 증가하였고 어느새 8개의 본당에 118개의 공소로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다.

   교안의 발생은 교회가 그들의 이익과 교회를 보호하며 적극적인 교세 확 장정책을 추진하며 종교분쟁에 적극 관여하였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데,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서 보이는 강원 지역의 교안은 1904년 이전에는 다양한 양상으로 보이나, 1907년 이후에는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제로 교안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분쟁의 강도가 높지 않아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교안의 해결 과정을 보면 신자 혹인 향촌사회가 선교사를 권력자로 인식하고 이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이고, 일반 지역민은 물론이거니와 지방 관리도 선교사 및 천주교회를 힘 있는 세력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서 강원 지역의 신자들은 육체적으로 비참할만큼 가난함에도 신앙을 지키는 모습은 위대하다고 평가할 정도였으나, 조선인의 전통 혼례와 장례방식에 있어서 관습과 미신이라는 측면에서 충돌하기도 하고 조선인의 관습이라면 선교라는 커다란 목적을 위해 이해하고자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여아 매매문제에 있어서는 천륜을 어기는 일이라고 여겼고,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규정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선교사들의 권위는 과거와 같지 않았다. 양대인(洋大人.으로 인식되며 우월한 권위를 인정받던 이들은, 일본 헌병보다 못한 존재로 신부를 인식하고 있는 신자들을 보면서 인식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제강점기 이전 그들의 눈에 비친 강원 지역민을 포함한 조선인은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로 긍휼의 대상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면서 조선인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존재였으며, 혹 그것을 파악했더라고 지속해나가지 못하는 참을성 없는 자들로 여기며 조선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훨씬 강화되기도 하였다.

외국인 선교사들의 기록은, 그들이 한국 근대사를 경험하며 1차 사료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라고 해도 그들의 시선에는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 그들은 서구의 시선과 자신들의 신앙을 통해 조선 사회를 이해하려 했고. 강원 지역민을 비롯한 조선인에 대해 가난하고 게으르며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교육 등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강원 지역민의 열악한 삶으로 인해 가톨릭교회와 멀어지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뚜렷한 방책을 내놓지 못한 채 근면한 신자들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생활을 추천할 뿐이었다.

그들은 과거 자신의 선배들이 지니고 있던 근본적인 태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강원 지역민의 장점으로 평가했던 착함과 소박함, 성실함이라는 표상은 어디까지나 서구 문명의 종교인 천주교를 받아들인 자들에 국한된 평가였다. 과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수없이 떠올린 미개한 동양인우월한 서양인이 교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은 떨쳐내지 못했다. 서울의 뮈텔 주교를 필두로 한반도의 외국인 선교사들은 각자의 선교지에서 사목활동을 벌이며 각 지역의 민중과 접촉해 그들의 삶과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구적 가치에 따라 강원 지역민을 비롯한 한반도의 사람들을 평가하고, 종교적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 글에서 인용된 수많은 외국인 신부들의 강원 지역민에 대한 기록은 근대 강원 지역의 역사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자료지만, 동시에 타자의 시선으로 본 기록이라는 점에서 한계점을 가진 것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목차

. 서론

   1. 연구의 목적

   2. 연구사 검토

   3. 연구 내용

   4. 선교사 현황

 

. 강원지역의 자연 환경과 기후

   1. 강원지역의 개관과 자연

   2. 기후와 재해, ·식물

 

.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선교사의 시선

   1. 동학농민운동

   2. 의병

   3. 조선을 매개로 한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

   4.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

   5. 신자들의 간도 이주에 대한 시선

 

. 선교사의 사목활동

   1. 뮈텔 주교의 눈에 비친 선교지

   2. 선교사들의 보고

   3. 성당 건축

   4. 학교 설립과 성영회

   5. 선교사들이 소개하는 신자들에 대한 미담

 

. 분쟁의 발생 - 교안

 

. 강원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인식과 오해, 그리고 한계

 

. 결론